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갈리폴리 전투 (문단 편집) == 전후 == 이 전투는 영국뿐 아니라 '''[[호주]]와 [[뉴질랜드]] 역사상 최악의 전투'''로도 기록되었다. 이 전투에서 전사한 [[ANZAC]](호주-뉴질랜드 군단) 병력이 약 1만명 정도인데, 당시 호주와 뉴질랜드의 총 인구수가 다 합쳐도 5~6백만 명 정도밖에 안 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피해라고 할 수 있다. 1차 세계대전 동안 총 사상자 22만명, 그 중 사망자만 10만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인적 피해를 본 호주와 뉴질랜드는 다른 영국 식민지와 함께 본국 영국에 대해 더 많은 권한을 줄 것을 요구했고, 결국 훗날 외교권과 군사권까지 획득하면서 독립국이 되었다. 즉, 이 전투는 아이러니하게도 호주와 뉴질랜드 국민국가의 관념이 형성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. [[존 키건]]의 저서『1차세계대전사』에 따르면, 오스트레일리아 젊은이들이 갈리폴리 반도로 종종 여행을 온다고 한다. 갈리폴리 전투에서 발생한 안작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의미로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전투가 시작된 [[4월 25일]]을 함께 기리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안작 데이(ANZAC Day)로, 대한민국으로 치자면 [[현충일]]과 같은 추모일이다. 처음에는 이 갈리폴리 전투만을 기렸으나 이후 그 대상이 확대되어 [[6.25 전쟁]]을 비롯한 안작군이 파병된 모든 전쟁에서 희생된 장병들을 추모하는 공휴일이 되었다. 아래는 [[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|아타튀르크]]가 1934년 안작 데이 당시 갈리폴리에 처음으로 찾아온 영연방 국민들에게 한 말이다. 당연하지만 아타튀르크는 튀르키예어로 말했으므로 튀르키예어 원문을 다음과 같이 싣는다. 이 연설문은 훗날 갈리폴리의 묘지와 호주 [[캔버라]]의 안작 대로(ANZAC Parade)에 있는 케말 아타튀르크 기념관, 뉴질랜드 웰링턴의 아타튀르크 기념관 등에 세워진 추모비에 새겨졌다. --두 쪽, 양측 모두 대인배라고 불릴만 하다-- 하지만 현재의 연구에 의하면, 아타튀르크가 정말 이 연설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. 그가 생전에 달리 영연방 병사들에 대해 언급한 것도 없고, 신문 기사들에서도 이런 연설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. 1953년 이 연설문을 쓴 이브라힘 카야의 인터뷰에서 아래의 문장들이 처음 언급된 것이다. >Uzak memleketin toprakları üstünde >kanlarını döken kahramanlar; >burada dost bir vatanın toprağındasınız. >Huzur ve sükun içinde uyuyunuz. >Sizler Mehmetçiklerle yan yana, >koyun koyunasınız. >Uzak diyarlardan evlatlarını harbe gönderen >analar; >göz yaşlarınızı dindiriniz, >evlatlarınız bağrımızdadır. >Huzur içindedirler ve huzur içinde rahat rahat uyuyacaklardır. >Bu toprakta canlarını verdikten sonra >artık bizim evlatlarımız olmuşlardır." >Those heroes that shed their blood >피를 흘린 영웅들이여, >And lost their lives. >목숨을 바친 영웅들이여. >You are now lying in the soil of a friendly country. >그대들은 이제 친구의 국토에 묻혀 있다. >Therefore rest in peace. >그러니 고이 잠들라. >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the Johnnies >여기 우리의 땅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잠든 >And the Mehmets to us where they lie side by side >조니들과 메흐메트들은[* 각각 영연방군과 오스만군을 지칭한다.] >Here in this country of ours. >우리의 눈에 다름이 없다. >You, the mothers, >머나먼 나라에서 아들을 떠나보낸 >Who sent their sons from far away countries, >어머니들이여, >Wipe away your tears. >눈물을 닦아라. >Your sons are now lying in our bosom >그대의 아들들은 우리의 가슴에 안겨 >And are in peace. >평온히 안식을 취하였도다. >After having lost their lives on this land they have >이 땅에서 목숨을 잃은 그들은 >Become our sons as well. >우리 모두의 아들이 되었나니. [[영국]]의 과학자 [[헨리 귄 제프리스 모즐리|모즐리]]도 이 전투에서 [[전사(죽음)|전사]]했다.[* 살아만 있었다면 노벨 물리학상이나 화학상이 유력했을 것이다. 간단하게만 설명하면 모즐리는 무려 19세기 초 원자설을 처음 제기한 [[존 돌턴]] 이후로 아무도 밝혀내지 못한 원소를 특정하는 방법을 발견해냈다. 결정적으로 이 사람의 공로로 지금의 '''주기율표'''가 거의 완성되었다.] 영국 입장에선 정말 여러 방면으로 잃은 것들밖에 없는 비극의 전투이다. 이 전투로부터 107년이 지난 [[2022년]]에 이 전투가 치뤄진 지역을 가로지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[[현수교]]가 건설되었다. 이름은 [[차나칼레 1915 대교]]. 이름에 [[1915년]]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